잠 - 무라카미 하루키
그것이 내 생활이다. 즉 잠을 못 자게 되기 전까지의 내 생활이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은 일의 되풀이였다. 나는 간단하게 일기 같은 것을 쓰고 있지만 이삼 일 깜밖 잊고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벌써 구별하지 못한다.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거기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인생인가, 때때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허망함을 느낀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단순히 깜짝 놀랄 뿐이다. 어제와 그제의 구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런 인생에 나 자신이 끼워 맞춰져버렸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찍은 발자취가 그것을 인정할 틈도 없이 눈깜짝할 사이에 바람에 날려가버린다는 사실에.
- 잠 -
도서관을 지나다가 살짝 괴기스러운 표지에 빌린 하루키 단편. 역시 나에게 하루키 소설은 단편이 맞는다. 단편을 읽으면 하루키 소설만의 공허한 느낌이 잘 전달된다. [잠]도 역시나 잠을 읽어버린 주부가 오히려 새로운 삶을 찾아가면서 일상의 공허를 표현하고 있다.
읽다보면서 왠지 익숙한 내용이다 싶었는데....몇 년 전에 읽은 단편이었다. 맘에 와 박히는 구절이 있어서 캡쳐해서 SNS까지 올렸었는데 그 구절을 다시 보게 되다니. 하지만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해당 단편은 2010년에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건지 마지막 부분은 이전에 읽었던 단편에서는 나오지 않은 장면인 것 같다. 나왔나? 그래도 여전히 일상의 공허함을 표현한 문구는 내 맘을 치고 지나간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