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Book][2016-11][소설]미쓰다 신조 『사관장』



『사관장』 – 조용히 스며드는 섬뜩한 괴담

한 달여 만에 다시 책을 들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를 멀리했던 나를 반성하며, 이번엔 정말 신중하게 골랐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고른 책은 미쓰다 신조의 『사관장』
이 작가의 작품은 몇 권 읽어봤기에 그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덕분에 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책장을 열었다.

표지는 대놓고 무서운 느낌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역시 미쓰다 신조답게,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어린 주인공이 아버지를 따라 오래된 명문가의 저택에 머무르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겪는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체험은 단순한 공포라기보다는, 점점 현실을 침범하는 불안감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뒤, 주인공이 다시 그 장소를 찾으면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묘한 사건이 교차되며 섬뜩한 분위기를 더한다.

읽는 내내 마치 어릴 적 어른들께 들었던 무서운 옛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지만, 미쓰다 신조 특유의 디테일하고 절제된 묘사 덕분에 훨씬 더 리얼하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조여오는 긴장감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모든 것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아, 찜찜한 여운을 남긴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은 후속작인 『백사당』 이어지는 이야기. 다행히 다음 작품도 도서관에서 함께 빌려왔기에, 곧 이어서 읽어볼 생각이다.

전형적인 자극적인 공포 대신, 서늘하고 기이한 이야기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사관장』은 미쓰다 신조 특유의 괴이한 정서가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다시금 그만의 세계관에 빠져들게 만든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 아가사 크리스티 (Agatha Christie)

And then there were none - Agatha Christie Ten Little Soldier Boys Ten little soldier boys went out to dine; One choked his little self, and then there were nine. Nine little soldier boys sat up very late; One overslept himself, and then there were eight. Eight little soldier boys traveling in Devon; One said he’d stay there, and then there were seven. Seven little soldier boys chopping up sticks; One chopped himself in halves, and then there were six. Six little soldier boys playing with a hive; A bumblebee stung one, and then there were five. Five little soldier boys going in for law; One got in chancery, and then there were four. Four little soldier boys going out to sea; A red herring swallowed one, and then there were three. Three little soldier boys walking in the zoo; A big bear hugged one, and then there were two. Two little soldier boys sitting in the sun; One got frizzled up, and then there was one. One little soldier boy left all alone; He went and hanged himself, and th...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1 그 도시에 가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곳에서 진짜 너를 만나고 싶다고. "도시는 높은 벽에 둘러쌓여 있어서 들어가기가 무척 어려워." 너는 말한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하든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 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일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15p - 여기서 " 진짜 너 "라는 말이 나에게는 " 진짜 나 "라고 들렸다. 그리고 도시로 가기 위해서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문장에서 많은 것들을 남겨놓고 밴쿠버에 온 내 자신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가족들, 언제나 즐겁게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야기들이 귀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들리는 익숙함까지.... #2 "맞아, 그런데 하나 기억해줘. 만약 내가 그 도시에서 너를 만난다 해도, 그곳에 있는 나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16p - 그리고 위의 문장에서 진짜 너의 만남이 새로운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전의 관계들이 정리되고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는 의미라고 볼 수도 있다. 마치 나에게 군대 시절처럼 말이다. 군대가기 전까지의 내 대학생활은 얌전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보니 대학 동기들에게 그렇게 기억되어져 갔다. 가끔씩 나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계기가 없었다. 하지만 군대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복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학교에 돌아오니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전의 동기들이 학년이 다르거나 군대에 가 있거나 같은 타이틀을 달고 있었으니... ...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그 언젠가 읽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책. 마치 처음 접하는 소설처럼 빠져들어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땐 내가 너무 어렸거나, 그냥 흘려 읽었거나. 기억나는 건 ‘와타나베’라는 이름 정도. 그때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지도.   이번에 다시 읽으며 느낀 건, 상실의 시대는 단순한 성장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어딘가 결핍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 없고, 미도리는 가족의 부재 속에서도 씩씩한 척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다. 나가사와는 모든 걸 가졌지만 결국 공허함을 피할 수 없고, 레이코는 과거에 묶여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잃고, 상실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상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루키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공간과 사물, 그리고 공허한 순간들 속에서 감정을 보여준다.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숲 속을 거닐던 장면, 미도리가 병실에서 와타나베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 "내 옆에 있어줘" 라고 했던 장면, 레이코가 기타를 치며 마지막 밤을 보내던 장면. 그 어떤 긴 대사보다, 그 순간들이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이번에 다시 읽고 나서야 이 소설이 제대로 와닿는 건, 그사이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저 흘려보냈던 문장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마음에 남는다. 젊음과 사랑, 그리고 상실이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이 아닐까. P.S. 그래도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