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없는 살인의 밤 - 히가시노 게이코 요즘처럼 진득하게 책을 붙들 시간이 부족할 때, 가볍게 한 편씩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 참 반갑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단편집인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은 그런 의미에서 딱 좋은 선택이었다. 이 책은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집에서 흔히 그렇듯, 책 제목은 마지막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역시 마지막 단편이 가장 강렬하겠군” 싶었는데,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각 단편마다 짧은 분량 안에서 히가시노 특유의 치밀한 전개와 트릭이 담겨 있다. 짧지만 그 안에 사건, 인물, 반전이 알차게 들어가 있어 단편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 마지막 단편인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은 한 집안에서 벌어진 한 여자의 죽음을 둘러싼 은폐로 시작된다. 범인이 없는 살인이라니, 처음엔 그 말 자체가 의문이었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아니, 사실은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어지는 마법에 걸리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반전… 왠지 반칙 같은데?” 물론 예상 밖의 전개는 흥미롭지만,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기억에 오래 남을 엔딩을 선사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은 단순히 분량만 짧은 게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인간 심리, 범죄의 동기, 사회적 맥락 등 여전히 날카롭고 묵직하다. 요즘처럼 긴 호흡의 소설이 부담스러울 때, 그의 단편집은 부담 없이 읽기 좋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까지 던져주는 책이다.